†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우리는 코로나19 감염병으로 힘든 여정에서 사순시기를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삶의 무게를 담담히 짊어지고 신앙 안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형제자매님들께 하느님의 크신 힘과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부디 가까운 시일에 그간의 애로와 성찰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성 요셉 성월’의 시작일인 오늘은 매우 뜻깊은 날입니다. 200년 전 오늘, 청양 다락골에서 가경자이신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이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평생 땀으로 한국교회의 기틀을 다지신 신부님의 삶을 기억하며 그 탄생일에 ‘해미성지와 순례길’이 교황청이 승인한 ‘국제성지’로 선포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하느님 앞에 가장 큰 이름, 무명 순교자!
교황청이 “한국 해미의 순교 성지를 국제성지로 선포”하는 교령(DECRETUM, 문서번호 ST/872020/P,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장관 살베토르 피지켈라 대주교)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탄생 200주년 희년과 대림시기 시작일인 지난 2020년 11월 29일에 발표하였습니다. 교황청의 이번 발표는 ‘무명 순교자’를 하느님 앞에 가장 큰 이름으로 세우고, 교회의 기억 안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그들의 삶을 밝혀줍니다.
해미성지는 선교사 없이 신앙을 받아들이고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으로 신앙을 증거한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순교지입니다. 해미의 순교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살아가며, 하느님 앞에 모든 사람이 존엄하다는 진리를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닦아주셨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길을 걸으며 역사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현대사에서 증거하였습니다.
대전교구 곳곳에는 세계 교회가 주목하는 신앙의 못자리인 내포가 있습니다. 보두뇌 (Baudounet) 신부님이 “성경에 있는 공동체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뮈텔문서』 1889년 4월 22일)라고 기록한 바로 그 교우촌 위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그들의 삶과 영성을 우리 삶으로 기억하고 되살리며, ‘우리 옆에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만납시다.
무명 순교자를 따르는 작은 실천들: 순례, 깨어남, 나눔
‘해미성지’의 국제성지 선포는 가장 소박한 삶에서 그분을 섬기는 우리를 하느님께서 가장 크게 보아주신다고 말해줍니다. 역사를 따라, 신앙의 순례지를 따라 걸어가며, 땀으로 한국교회를 일구신 최양업 신부님과 삶으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증거하신 순교자들을 만납시다. ‘해미성지’를 종착지로 걸어가는 순례길이 세계인들의 신앙 불꽃을 되살리는 자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과학기술의 화려한 빛이 신앙의 빛을 가린 이 시기에 ‘무명 순교자’를 따르는 우리의 삶이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밝히 보여줄 것입니다. 특히 2014년 8월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 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한 아시아의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신 “깨어나라!”(Wake up!)고 외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우리는 교황님의 외침과 아시아 젊은이들을 기억하며 준비하고 있는 ‘청년문화센터’의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특별히 삶의 의미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신앙의 후예로서 우리가 물려받은 과제를 기쁜 마음으로 완수하고 전해줍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사회 회칙 “Fratelli tutti”(모든 형제들)를 통하여 코로나19 감염병을 이겨내는 방법과 코로나19 후에 교회가 새롭게 나아갈 모습 및 인류가 더불어 함께 사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형제애의 실현으로 교회가 쇄신되고, 사회적 우애를 통해 인류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해답의 길입니다. 해미의 무명 순교자들과 한국의 신앙 선조들은 믿음과 삶이 일치하였던 분들로서 “모든 형제들”의 가르침을 이미 실행에 옮겼던 분들이십니다.
대전교구는 신앙 선조들이 보여주신 사랑의 실천을 본받고자 “백신 나눔 운동”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나눔은 인간의 탐욕이 야만성을 드러낸 이 시대에, 하느님께 대한 신뢰에 발을 딛고,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는 복음 실천 운동입니다. 우리 모두 끊임없는 기도와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로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교회와 인류가 더불어 함께 사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앞장서도록 합시다.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1베드 4,8)
2021년 성 요셉 성월 첫날.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탄생 200주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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