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친교를 이루는 교구 공동체”
- 교구 시노드 정신이 뿌리내리는 해 -
소통과 친교를 실현하는 ‘공동합의성’(공동 식별)
사랑하는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 여러분!
1. 우리는 어둡고 거친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니다. 과학기술이 생활방식을 넘어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세계이며, 이념의 갈등으로 서로에 대한 미움이 더욱 커가는 세상입니다. 또한 물질만능주의와 성장제일주의, 적자생존의 법칙이 교회 안에도 깊숙이 스며든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반성하며 우리 교구는 지난 4년간 시노드의 여정을 함께 걸었습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다가오는 2020년의 문을 활짝 열고, 시노드에서 함께 나눈 반성과 결심을 실현하는 첫해로 만들어 갑시다!
2. 교회를 이끄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시노드를 통해 성령의 인도하에 함께 걸어가는 교회의 신비를 체험하였습니다. 성령께서는 마음속에 담긴 상처와 부끄러운 교회의 모습을 말하고 듣고 보며 보듬는 귀한 시간을 마련해주셨습니다. 『복음의 기쁨』과 “순교자들의 삶”은 교회의 모습을 성찰하도록 이끄는 나침반이었고, ‘공동합의성’의 정신은 대전교구 쇄신을 위한 지침이었습니다.
3. 이처럼 우리 교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 시노드 최종문헌의 지향과 비전 안에서 새로운 시대의 사목을 여는 2020년을 ‘소통과 친교의 해’로 선포합니다! 2020년은 지난 4년간 함께 걸어온 ‘교구 시노드 정신이 뿌리내리는 해’가 될 것입니다. 지나친 성직주의를 지양하고 교회 내 하느님 백성의 책임과 활동을 보장하여, 교회의 변화된 모습이 기쁜 소식으로 선포되는 한 해를 만들어 갑시다.
4.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에 하느님 백성 모두가 경청하고 서로를 위하며 복음 선포를 위해 나아갑니다. 이것이 2018년에 교황청에서 발표한 문헌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의 정신입니다. ‘공동합의성’으로 번역된 ‘Synodalitas’의 핵심은 성령의 인도하에 함께 복음 선포의 길을 걸어가는 데 있습니다. 이는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심어진 ‘신앙 감각’을 존중하며 지금의 현상과 의미를 함께 식별하는 데서 실현됩니다.
5. 이처럼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가는 여정에서 교회는 진정으로 세상과 함께 걸어갑니다. 하느님 백성인 사제 · 수도자 · 평신도들은 공동합의성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넘어 갈라진 교회와의 일치, 더 나아가 교회와 세상이 성령의 인도하에 함께 완성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교회는 모든 사태와 인간 영혼의 감각을 활짝 열어 경청하고 함께 아파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함께 노력하며 공동합의성을 실현합니다.
『복음의 기쁨』으로 열매 맺는 교회
6. 교회의 본질은 선교입니다. 교회는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증거하는 선교사입니다. 비단 입교자의 수를 늘리는 데 국한되지 않고 신앙인 각자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는 여정이 선교의 여정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배치되는 가치관과 행동을 거부하고, 사랑과 섬김과 나눔으로 평화를 이룰 때 세상은 하느님의 사랑을 보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세상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이 기쁜 소식의 선포가 되는 이유입니다.
7. 사랑하는 힘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사랑의 실천인 선교는 하느님 말씀으로부터 주어지는 기쁨을 나눔에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복음 선포를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성경의 말씀에 경청하고 말씀의 힘이 우리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이끌도록 우리 자신을 비우는 데 있습니다. 성경공부와 묵상에 충실하면서 특별히 성경 말씀을 생활에 옮기는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한, 성사 참여를 통해 하느님 현존 앞에 자신을 가다듬는 시간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이럴 때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세상 안에 당신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8. 대전교구 신앙의 못자리인 순교자들의 삶은 선교의 뛰어난 모범입니다. 세계교회사에 빛나는 우리 신앙 선조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증거했습니다. 목숨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사랑과 섬김과 나눔을 실천한 그들의 증거가 역사 가운데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보여주며 신앙을 전파하였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의 기준을 철저히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른 그들의 삶은 오늘 우리가 나아갈 길을 보여줍니다. 성 김대건 신부님과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21년도 잘 준비해 갑시다.
9. 초기 한국교회가 보여준 사제와 평신도의 협력, 낯선 이들에 대한 환대와 약자에 대한 우선적 배려, 복음 묵상과 성찰 및 기도의 철저한 생활화는 공동합의성의 주요정신이 실현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이 제시하는 교회의 자기반성 기준과 순교자들의 영성은 빛과 소금이 되어 어둠을 물리치도록 이끌어줄 것입니다. 이것이 대전교구 시노드를 통해 우리가 함께 확인한 교회의 나아갈 길입니다. 이러한 반성과 성찰을 바탕으로 2020년 대전교구의 사목 실천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교구 사목 실천 방향
첫째, 하느님을 향한 신앙 여정에 ‘경청을 통한 대화’와 ‘공동 식별과 공동합의성’이라는 시노드 정신이 구현되도록 세부 사항을 점검하고 실천해 갑시다. 시노드는 정지된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서로의 이야기와 상황을 듣고 공감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는 이제부터 더욱 진지하게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에 제시된 원칙과 취지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교구 백성 모두가 배우며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 교회구성원의 조화와 협력이 돋보이는 교회,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교회, 세상의 편견과 그릇된 가치관이 넘어오지 못할 만큼 높지만 ‘가난한 이웃 형제들이 쉽게 넘어올 수 있도록 충분히 낮은 교회’, 섬김과 나눔을 증거하는 교회로 성장합시다.
둘째, 『복음의 기쁨』을 내면화하고, 실천하는 새로운 노력들을 해 갑시다. 시노드의 정신과 더불어 『복음의 기쁨』을 우리 사목현실을 진단하고 기획하는 기준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사목적이고 선교적인 회개는 언제나 우리의 시작점이 될 것이며, 교회의 전례와 교리 그리고 말씀 선포가 오늘 우리 사회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겸허히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공동체의 영역별로 자신의 활동이 누군가 쉽게 알아듣고 대화에 개방되어 있는지, 인내와 온유 그리고 심판하지 않는 환대 속에 복음을 선포하는 활동이었는지를 돌아봅시다. 또한, 정신적 세속성이 교회 안에 스며들어 내적 정신적 피폐를 초래하지는 않는지, 권력 지향성이 교회 운영과 신앙생활을 물들이지 않는지, 형제자매의 아픈 상처와 가난함이 사목의 제일 자리에 놓였는지를 돌아봅시다. 특히『복음의 기쁨』에서 강조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살고 있는지 질문해 봅시다. 본당 신자만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어려움 속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복지예산의 집행과 그들을 향한 사목적 배려와 관심을 키워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의 본질적인 이웃을 돕는 복지예산을 집행하기 위해 현재의 5%에서 매년 1%씩 늘리는 공동체를 건설합시다.
셋째, 교구 시행령으로 선포되는 새로운 사목지침서를 공동책임, 공동참여의 자세로 함께 살펴봅시다. 교구는 하느님 백성과 함께 개정된 교구 사목 지침서를 검토해 가면서 수정, 보완하고 이에 따른 세칙도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신청사 이전과 함께 완성된 교구 사목지침서(‘사제생활지침서’, ‘교구사목지침서’, ‘본당사목협의회 운영지침서’)를 제시할 것입니다.
넷째, 시노드 최종문헌의 건의에 따라 ‘시노드 사목연구소’와 ‘성직자실’이 신설됩니다. 시노드 사목연구소를 통해서 교구 사목의 로드맵 설정, 중장기적인 교구 사목비전 수립, 빅데이터 수집 등의 체계적인 연구 과정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직자실의 신설과 함께 교구 신부님들을 위해 필요한 지원 방향과 다양한 사목 정책들이 마련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정체성의 뿌리인 순교자들의 삶과 영성을 배우고 보급할 연구소 기능의 강화와 ‘순교자 학교’등을 통해 순교영성의 심화를 위한 노력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다섯째, 성소 계발을 위해 교구와 본당, 가정이 함께 공동노력과 공동책임을 다하도록 노력해 갑시다. 지난 몇 년간 우리 교구는 성소의 위기를 절감하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교구민이 노력해 왔습니다. 교구에서는 예비신학생 모임을 강화하고 청년들을 위한 모임을 개설하였고, 본당에서는 많은 예비신학생을 모임에 보내주셨고 부모님 또한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성소 계발에 있어 교구와 본당, 가정의 공동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본당에서 청소년, 청년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는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젊은이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길을 제시하기 전에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들의 목소리가 사목 현장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는 것이 바로 소통과 친교를 이루는 교회의 출발점이 됩니다.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서 존중받는 중요한 주체임을 자각하고, 자신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때, 그리스도의 사도로 살아가고자 하는 원의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올 한 해도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뿌려주신 소중한 성소의 씨앗이 싹 트고 자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노력하도록 합시다.
새해에도 우리 교구 하느님 백성이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응답, 새로운 교회로 나아가는 해로 만들어 갑시다. 저는 새로운 복음화의 여정 안에서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서로를 돕는 ‘하느님 백성’의 일원임을 잊지 않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백성’ 모두가 각자의 소명과 역할을 통해 풍성한 은총을 체험하는 교구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특별히 평신도의 다양한 사목적인 참여를 활짝 여는 교구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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